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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받기만 한 삶, ‘다문화 2세 교육’으로 갚으며 제2의 삶”
문화일보   2011-06-09 09:25:14, 조회:603, 추천:333


  지난 2009년 2월 이화여대에서 정년퇴임한 전숙자 (67) 전 교수가 다문화 전문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이화여대 교수로 살아온 제1의 인생이 사회교육전공 학자로서 커리어를 쌓는 데 집중된 삶이라면 다문화 전문가로서 시작한 제2의 삶은 그간 쌓아온 지혜를 사회에 되돌리기 위한 베풂의 삶이다. 그래서 그가 다문화 관련 봉사를 위해 지인들과 함께 만든 단체이름도 사단법인 ‘함께우리’다. 거창한 운동을 제창하기보다 사회적 혜택을 많이 받은 중산층으로서,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회지도층 인사로서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하겠다는 것이다. ‘함께우리’는 은퇴기를 맞은 중산층 지식인들이 나보다 우리, 가족보다는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며 만든 사회봉사단체라는 점에서 재미보다 의미가 있는 제2의 삶을 준비하는 수많은 예비 은퇴자들에게도 좋은 모범사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1. 왜 다문화인가

전숙자 ‘함께우리’ 상임이사를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사직동 한 카페에서 만났을 때, 먼저 “은퇴 후에 시작한 일이 왜 다문화이냐”는 질문부터 건넸다. 은퇴 후에도 먹고사는 일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이고, 일부 그런 부담에서 벗어난 사람들일 경우에도 은퇴 후 꿈꾸는 일은 대개 생업에 있을 때 하지 못했던 여행이나 취미활동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제가 사회교육을 전공했고 평생 학생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왔는데, 우리나라는 앞으로 다문화 사회가 도래할 것이란 판단이 들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다문화가 부각되면서 주로 이주여성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데, 더 중요한 것은 2세 교육, 즉 자녀교육이죠. 결혼 이주여성의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건전하고 올바른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식인들이 먼저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에 있을 때 북한사회 문화학회를 10년 정도 했는데 그때부터 탈북자 문제도 다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남아 출신이든, 북한 출신이든 이들의 2세가 한국사회에 정착하기 위해선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고 정서적 안정감을 갖는 것이 제일 필요합니다. 그래야 자아정체감이 확립되고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우리 사회의 건전한 시민으로 성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은퇴 후의 일을 위해 ‘함께우리’를 조직한 것은 사회교육 전공 교수로 보낸 제1인생이 남겨준 숙제를 완수하기 위한 목적인 셈이다. 학교 안에 있을 때엔 한국의 미래세대를 위한 사회 교육에 주력해 왔지만 이제 학교 밖 세상으로 나온 뒤엔 한국 출신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계, 캄보디아계, 베트남계 한국인들까지 포괄하는 다문화적 평생교육으로 관심과 활동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2. ‘함께우리’로 모인 ‘전숙자의 친구들’

그는 2009년 이화여대에서 정년퇴임을 하기에 앞서 그보다 1년 전인 2008년 ‘함께우리’를 사단법인체로 출범시켰다. 은퇴 전에 은퇴 후를 준비하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늘어질까봐 스스로에게 짐을 지우는 일을 먼저 한 것이다.

“정년퇴임을 준비하며 과거를 되돌아보니 축복받은 삶을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려운 시대에 태어났지만 (그는 해방 한 해 전인 1944년 태어나 6세 때 6·25전쟁을 겪었다) 먹는 것 걱정없이 항상 새로운 아이들 속에서 새로운 학문할 수 있었던 것이 감사했습니다. 또한 정년퇴임을 누구나 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퇴임도 맞게 됐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이제 나머지 인생은 사회에 환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에 지인들이 공감을 하면서 ‘함께우리’ 창설로 이어졌습니다. 내가 먼저 1000만원을 출연하며 ‘우리가 축복받은 인생을 살았으니 똑같이 내서 함께 좋은 일을 하자’고 제안했고 이에 친구와 지인들이 호응하면서 1억5000여 만원이 모였습니다.”

여기엔 이화여대에서 함께 일했던 교수와 선후배들, 그리고 연세대, 서울대 교수 출신 지인들이 참여했다. 이화여대 출신인 김영희 ‘사랑심기’공동대표가 이사장, 연세대 교수 출신인 이영선 한림대 총장이 고문을 맡았고, 배일환 이화여대 음대 교수, 김용학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등 15명이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3. 다문화의 희망을 가르치는 ‘함께우리’

‘함께우리’는 창설된 지 3년밖에 안 된 신생단체지만 이화여대 정보과학대학원장, 여성지도력 개발센터 소장 등을 역임하며 쌓은 전 상임이사의 저돌적이고, 밀어붙이는 업무스타일 덕분에 벌써 ‘찾아가는 예능교육’, ‘다문화 가족 리더십 향상 프로그램,’ ‘다문화 상담전문가 양성교육’ 등 8개 프로그램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전 상임이사는 ‘함께우리’의 자매단체로 다문화사회진흥원을 만들어 다문화 관련 프로그램 및 전략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특히 ‘찾아가는 예능교육’프로그램은 서울과 파주에서 진행되며 악기 교습, 합창 연습, 민요 교습 등으로 나눠지는데 다문화가정 출신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다.

악기 교습의 경우, 배일환 이화여대 음대 교수 등의 도움으로 매주 토요일 서울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에서 진행되는데 ‘함께우리’ 측에서 바이올린, 플루트 등의 악기를 다문화가정 출신 아이들에게 대여해 주며 가르치고 있다. 다문화가정 출신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기 위해 토요일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데 대학교수들에게 무료로 악기 연주를 배울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경쟁이 치열하다는 후문이다. 중국, 몽골, 베트남, 캄보디아 등 여러 나라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중에서 특히 중국 출신 엄마들의 교육열이 한국 엄마들의 그것을 뺨칠 정도로 극성스러운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우리’에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가르쳐온 자원봉사 교수들과 학생들은 오는 11일 오후 3시 이화여대 김영의홀에서 그간 갈고닦은 연주실력을 선보이는 음악나눔 발표회도 연다. 여기엔 뇌성마비 피아니스트 김경민씨, 가스펠 가수 박종호씨 등도 함께 참여하며 알베로 어린이 합창단이 특별출연한다.

4. 힘들 때마다 ‘축복받은 인생’을 되뇐다

전 상임이사가 3년간 전업적으로 뛴 덕에 ‘함께우리’는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동료 교수들과 학생과 교직원의 협력과 지원 속에서 평생 일하다 학교 밖으로 나온 뒤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해야 하는 게 가장 당혹스러웠다.

“어떨 때엔 너무 힘들어 내가 미쳤지. 괜히 자청해 이런 일을 하고 있다니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내 ‘축복받은 인생을 산 것에 대한 보답은 해야 한다’는 말로 저를 다독입니다.”

그는 일 속에서 부딪치는 어려움은 일로 풀고, 공부를 통해 새롭게 활력을 얻는다. 요즘 그는 사회단체 대표이자, 교수, 그리고 학생으로서 1인 3역을 하고 있다. ‘함께우리’ 상임이사 겸 다문화사회진흥원 대표로 일하면서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초빙교수로 다문화문제를 가르치고, 저녁에는 가톨릭대 대학원에서 상담학을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다문화가정 관련 일을 실제 해보니까 상담을 잘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상담교육을 다시 받기 시작했어요. 다문화 실무자들이 상담을 할 수 있게끔 베트남이나 중국 관련 다문화강사들에게 상담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어 저부터 다시 배우는 거지요.”

5. 다문화사회진흥원, 글로벌 싱크탱크로 키우고 싶다

전 상임이사는 요즘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한 교육매뉴얼 제작 준비를 하고 있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엄마의 나라인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등을 제대로 알게 하기 위해 엄마와 함께 공부하는 엄마나라 이야기 등도 준비 중이다.

1920년대 미국에 이민자들이 몰려들 때 미국의 사회활동가들이 미국 대기업들의 도움을 받아 운영했던 ‘꿈의 버스’모델을 도입해 다문화가정이 많은 경상도, 전라도의 곳곳을 찾아다니며 다문화 교육을 시키겠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전세계에 나가서 살고 있는 한민족들이 그 나라 문화에 잘 적응해 살 수 있도록 하는 글로벌 다문화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앞으로의 꿈에 대해 물었더니 그는 30년 경력의 교수답게 분명한 어조로 “다문화사회연구원을 글로벌 싱크탱크로 키워내 우리나라가 다문화연구의 중심지가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정신적인 것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글로벌 역사문화교실’도 열고 싶다고 했다. 현역 때보다 더 바쁘게 움직이는 그의 표정엔 다문화 전문가로서 봉사의 삶이 주는 축복이 가득했다. ‘축복받은 인생에 대한 보답’으로 다문화활동을 시작했는데 벌써 그 일은 그에게 삶에 대한 열정과 비전, 평화와 자유라는 또 다른 축복을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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